조경 초보

2019. 11. 2. 01:50나의조경이야기

벌써 9년이나 묵은 글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쓴 것만 같다. 조경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한 탓인 듯 씁쓸하다가도 사뭇 그 뜨거움이 아직은 가슴 한켠 남아있는 듯 하여 마음이 놓이기도 하다.

조경밥을 먹은지도 햇수로 13년인데

여전히 조경은 어렵다.

 

하필 이렇게 추운 날씨에 현장 근무라니, 차라리 왔다 갔다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나마 괜찮으련만 꼼짝없이 서서 준공도면을 그리느라 한 없이 매서운 칼바람이 야속하기만 하다. 마른 잎 조차 다 떨어진,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이리저리 헤매면서 요 녀석들을 하나 둘씩 세어가며 구분해 나가는 일이 여간 쉽지가 않다. 활짝 꽃이 폈거나 잎이 무성할 때 꽃이나 잎, 수형으로 간신히 구분하던 것들인데 그마저도 홀랑 벗어 던져 버렸으니 어쩌란 말인가. 그럼에도 재밌는 것은 이 녀석들의 그 앙상함에도, 이제 막 이식을 해 심한 전지 작업으로 고유의 형태를 잃었음에도, 각각의 얼굴이 있다는 것이다. 이전엔 미처 눈치채지 못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되다니. 아아 오히려 얼마나 감사할 따름인가. 목욕탕을 같이 가면 친해진다는 말이 있듯 서로의 발가벗은 몸을 송두리채 드러내는 것은 서로 가까워지는 최고의 지름길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 녀석들은 내가 더욱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어도 보고, 이리저리 훑어보기도 하고, 껍질도 조금씩 벗겨보기도 하고, 간혹 살짝 가지도 꺾어보기도 하지만 그 어떤 부끄럼이나 저항조차 없으니 나만 신났다. 그래 니들이 내 속내야 무슨 상관이겠니. 얼씨구나 웬만큼 알겠다 싶어 신나게도 구분지어 도면을 그려 놓고는 스스로 뿌듯해 하며 확인 차 다시 비교해보니 또다시 도무지 구분이 안되는게다. 신기하게도 나무라는 녀석들은 같은 수종임에도 어찌나 다르게 생겼는지, 다른 수종인데도 어찌나 비슷하게 생겼는지. 치사하게도 내몸은 온갖 방한도구로 꽁꽁 동여맨 채 빨개벗은 이 녀석들과 친해질 생각을 하다니. 그래 아직 멀었구나. 하아 조경 초보 딱지는 언제쯤 떼려나.

 

20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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