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2019. 11. 3. 17:07ㆍ나의조경이야기
비오는 주말 근무.
현장의 산만한 풍경은 강렬한 자극이다. 끊임없이 잘라내고, 부수고, 뚫어대는 굉음 속에서 힘겹게 식재된 앙상한 왕벚나무 가지의 흔들림이 주는 왠지 모를 처절함. 거대한 중장비가 스트로브잣나무를 뭉텅이채 너덧 주씩 무자비하게 들고 나르는 모습은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뻘이 된 흙 속에서 허우적 대는 육따블 기사의 욕지거리도, 우의도 벗어던진 채 온몸에 흙이 묻은 이반장님의 꽉 낀 빨간 티셔츠도,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덜 깬 김과장님의 몽롱한 눈도, 축축하게 젖어버린 내 안전화의 썩은 냄새도, 녹지 위에 덩그러니 쌓여 있는 공구리 똥도, 수 십번 씩 바뀐 샵도면 뭉치들도 모두 모두 빗소리와 함께 하나 하나 바늘 처럼 내 몸을 찌릿하게 쏘아댄다.
심장이 두근 댄다. 이러다 미치거나 혹은 말거나.
2011.11.05